<조급하지 마라>

<조급하지 마라>

'조급하지 마라', 오늘 아버지가 해주신 말씀이다. 주말에 오래간만에 집에 들렀다. 저녁 식사하고, 차 한잔하면서 여러 대화를 했는데, 기억에 남는 말씀은 한 문장뿐이다.

아버지는 나를 보면 대견하면서 동시에 걱정된다고 하신다. 학생 때는 대견한 마음이 더 컸는데, 이제는 시간이 지나가면서 걱정되는 마음이 더 크시단다. 가끔 집에 들렀을 때, 볼살이 빠져있는 것들을 보면 그게 다 신경 쓰이신단다. 너무 많은 것들을 희생하면서 스스로 몰아붙일 필요가 없다고 하신다. 편히 하라고.

모든 게 불안에서 시작됐을지도 모르겠다. 미래에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일지, 미래에 내가 원하는 모습에 다가가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명확하지가 않다. 이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나는 도피하고 있다. 현실에서 주어진 것들에 목숨을 걸고 몸을 던진다. 남들이 보기엔 참 성실하고 좋아 보이는데, 종국적으로는 도피에 불과하다. 미래에 대해 그려지지 않는 불안함을 대처하기 위해 눈앞에 보이는 것들에 파고드는 것뿐. 이 과정과 노력이 헛되지 않을 것이라고 겨우 바라며.

내 모든 불안은 방향의 상실에서 온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어떻게 꾸역꾸역 걸어왔는데, 이제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계속 5년 뒤의 나를 상상한다. 5년 뒤에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은 무엇일지, 그 모습들에 맞춰 맞는 방향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그 과정에서 얻어야 하는 것들과 희생해야 하는 것들을 생각한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과, 주어진 일들로 도피하는 것을 나눠야 한다. 과연 나는 몰입하고 있는가, 아니면 도피하고 있는가.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여호수아 5절, 6절)

'조급하지 마라'. 방향이 맞다면, 오래 걸리더라도 좋다. 내가 아닌 남들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조급한 마음으로 단기적인 결정들에 휘둘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비록 짧은 기간 동안 스스로를 믿을 수 있는 징표가 나타나지 않더라도, 나 스스로가 맞는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음을 스스로 믿고 견뎌낼 수 있는 힘이 더 생겨나기를 바란다. 내가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외부의 말들로부터 오는 상처가 아니라, 나 스스로가 내게 주는 상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