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목적인 성장의 늪>

<맹목적인 성장의 늪>

1/ <성장> 이라는 단어를 자연스러운 상태라고만 받아들이고 살았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 단어보다 더 부자연스러운 단어는 없다. 스타트업들이 말하는 이상적인 상태인 <J 커브>라든지, <exponential growth>와 같은 그래프들을 아주 '잘' 보면, 기괴한 모양이다. 성장에 있어서 모든 과정에는 단계가 있고, 시간이 걸리고, 시행착오가 걸리는 일인데, 갑작스러운 기울기의 폭증을 보여주는 모양들. 잘 보면 부자연스럽지 않은가? 성장이라는 단어 앞에 붙는 '폭발적인'이라는 형용사도 자연스러운 상태가 절대 아니다. 아주 소수의 성장을 해내는 '소수의 케이스'들이 벤치마크가 되고, 그 벤치마크들이 되지 않으면 '실패한' 모양이 되어버리는 트렌드 자체도 정말 기괴하지 않은가?

2/ <성장> (J 커브와 같은 성장을 의미한다)은 물리적으로도 말도 안 되는 법칙이다. 사람이 경험을 쌓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고, 경험이 필요하며, 시행착오가 필요하고, 숙련된 판단을 하기 이전까지 수많은 소위 '비용'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데 - 이 과정을 생략하고 엄청난 결과를 '지속적으로' 그려나가는 그래프를 삶에서 그린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한 번은 가능할지 몰라도. 역사에서도 생산성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시기도 아주 일부 시기에 그쳤을 뿐이다. 대부분 우리들은 살아가면서 주어진 것들에 맞춰서, 조금씩 점진적인 개선들을 하면서 살아왔고 그게 또 자연스러웠다. 요즘 시대만큼 자신이 주어진 것에 절대로 만족하지 말고, 자신의 포텐셜을 극대화해서 없던 무언가를 만들어 '성장'해 나가야 한다는 강박이 하나의 '삶의 전제'가 된 시기가 또 있을지?

3/ <성장> 이라는 단어를 '직업적으로만' 삶의 한자리에 내어준다면, 차라리 괜찮다. 직업적인 삶의 영역과 개인적인 삶의 영역을 구분하면 되기 때문에. 삶과 직업을 조금은 분리할 수가 있을 테니. 그런데, 사람 일이라는 게 그렇게 작동하지는 않는 듯하다. 무의식적으로 생각의 근저에 숨어들어가 나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게 <성장>이라는 단어를 삶에서 고민하고 있는 듯한데, 이때 성장이라는 단어는 삶에 있어서 굉장히 파괴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한다.

4/ 개인의 삶에 있어서도 <비정상적인> 양태를 띄는 '성장'을 바라고 있지는 않았는지? (스스로 묻는다) 자연스럽게 걸리는 축적의 과정을 시행착오(불필요한 시간의 낭비)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는지? 이 과정을 '돌파' 해 내지 못하는 나 자신에게 계속된 채찍질만 해대고 있는 내가 과연 정상인지?

이 과정을 버텨낸 사람들의 (유튜브에 나와서 '이렇게 하면 된다'라고 말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며 왜 나는 저렇게 되지 못하는지?를 자문하며, 스스로를 괴롭히지는 않았는지 말이다. 물론 대단하지만, 그렇게 되지 못함이 삶을 잘못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데 말이다. (만약 본인이 그렇다면, 자기계발 '병'에 걸렸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5/ 대부분의 (비자연적인) 성장의 그래프를 삶에 있어서 그리는 사람들은 어찌 보면 가장 큰 리스크(그렇게 삶이 작동하지 않을 때, 삶에 있어서 만족하지 못하는)를 통제하지 못하며 살아나가는 것은 아닐지, 그리고 그 삶은 얼마나 위험한지 생각한다. 한 보 양보해서, 자연적인 이치를 뛰어넘으며 성장하고자 하는 마음 자체는 그렇다 치자고 해도 (인간의 정복욕구도 여기에 들어갈 테니), 그렇지 못했다고 해도 거기에 스스로 돌까지 던질 필요성이 있는지?

6/ 모두가 주어진 환경이라는 것이 있고, 정해진 자리가 있다. 물이 흐르는 곳으로 흐르지, 절대로 역류해서 흐를 수가 없다. 정해진 자신의 상태와 본연의 모습, 자신의 한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모습 자체에서 더 나은 모습을 '자연스럽게' 유도해나가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성장이지 - 그래프를 그려서 어떻게 결괏값의 폭을 더 빠르게 (여기서 더 빠르게는 대부분 '남들보다, 혹은 비교 군 대비'를 의미한다) 만드는 성장을 의미하지는 않는데, 대부분은 진정한 의미의 성장보다 속도 위주의 성장을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않나 싶기도 하다. 우리는 속도에 대한 이야기들은 참 많이 하는데, 방향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 하는가? 각자 만의 삶의 영역에 있어서 그릴 수 있는 지도가 어떤 모습인지에 대해서 서로 흥미롭게 이야기 한 적이 언제적인지, 스스로 반문해도 꽤나 오래적 일인 듯 하다.

7/ 어차피 월요일이 되면 또다시 같은 이야기, 같은 주제에서, 더 속도를 낼 수 있는 사람들과 어떻게 하면 더 빨리 결괏값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에 대한 이야기들 하는 데, 그 흐름 속에 휩쓸리지 않기가 참 어려운 일이지 않나. 우리가 말하는 KPI, OKR, ROAS, ROI, 모든 대부분의 투자 대비 결괏값에 대한 지표들도 결국은 '정해진 시간' 대비 더 빠른 결괏값을 전제로 하는 이야기들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어떻게 하면 나만의 성장 속도를 유지하면서, 흔들리지 않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을까?

8/ 주변에 성장을 이야기하는 친구들과 이야기하며, 이런 생각을 메모로나마 정리한다. 때로는 친구들의 성장을 (나의 성장도 포함) 응원하지만 - 동시에 그 성장이 남들의 속도에 견주는 성장이 아니기를, 그리고 그 성장의 속도에 '비교적' 늦춰진다고 본인의 길이 잘못된 길이 아님을 생각하기를 바라면서. 삶은 눈치 보며 살기엔 짧고, 내가 바라는 대로 살아가기엔 참 길다. 나는 내 속도대로, 내 그릇에 맞게, 내게 주어진 모습대로 성장하고 있는지 다시 묻는다. 이때 말하는 성장이라는 단어는 앞서 이야기한 J 커브를 그리는 성장과 다른 의미의 성장일 것이다.